사설·칼럼

“망국적 부동산 투기 잡겠다”는 대통령 선언 속, 삼성전자 직원엔 '연 1.5%·최대 5억 주택대출' 논란 [기자수첩]

서민은 대출규제 직격…대기업 사내대출은 DSR·LTV 사각지대 지적

김정기 기자
2026.05.24·10분 읽기·조회 1,471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금융 규제의 고삐를 죄는 국가 앞에서, 누군가는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누군가는 회사 복지라는 이름으로 수억 원대 저금리 주택자금에 접근한다. 삼성전자의 사내 주택대부 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그래서 단순한 기업 복지 문제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동안 부동산 투기 근절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잡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불평등과 절망을 키우고, 빚을 통한 투기가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다는 문제의식이다.

 

정부 정책 방향도 이와 맞닿아 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대출 총량 관리는 실수요자의 대출 가능 금액을 직접 제한한다.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값이 높은 지역에서는 이 같은 규제가 내 집 마련의 문턱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정부 정책과의 엇박자다. 정부가 가계대출 관리를 이유로 서민과 실수요자의 대출 문턱을 높이는 상황에서, 국내 대표 대기업 임직원에게 수억 원대 저금리 주택자금이 제공된다면 형평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기업 복지의 취지를 인정하더라도, 주택시장과 가계부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라면 정책적 점검 대상에서 완전히 비켜서기는 어렵다.

 

논란은 삼성전자 노사가 최근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사내 주택대부 제도를 포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커졌다. 해당 잠정합의안에는 평균 임금 6.2% 인상, 특별경영성과급 제도 신설, 주택자금 대출제도 신설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 해당 합의안은 조합원 찬반투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잠정안으로, 최종 확정 여부는 투표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무주택 직원은 주택 구입 자금 최대 5억 원, 전세 자금 최대 3억 원까지 연 1.5% 금리로 지원받을 수 있다. 상환 기간은 최장 10년 수준으로 전해졌다.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임직원 입장에서는 주거 안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업 복지 차원에서 보면 긍정적 요소도 있다. 직원의 생활 안정을 지원하고 장기 근속을 유도하는 제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주택시장에서 경쟁하는 국민의 출발선이 직장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사내 주택대부는 일반 금융회사 대출과 구조가 다르다. 기업이 조성한 사내근로복지기금이나 내부 복지제도를 통해 임직원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DSR이나 LTV 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구조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과 병행할 경우 '실제 차입 여력이 얼마나 확대되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만의 문제로 한정하기도 어렵다. 주요 대기업과 공공기관 상당수도 임직원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사내 주택자금 대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대 1억 원 한도, 연 1.5% 금리의 대출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도 최대 1억 원을 연 1.2% 금리와 10년 원금분할 상환 조건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SK에코플랜트는 근속 2년 이상 무주택 임직원을 대상으로 최대 5천만 원을 지원하고, 법정이자 상당분을 회사가 부담하는 구조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도 최대 1억 원, 연 2% 수준의 사내 주택자금 대출 제도를 운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나무 사례는 논란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두나무는 2025년 7월 주택 구입과 전세보증금 관련 사내대출 한도를 직원당 3억 원에서 5억 원으로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대출은 사내 기금으로 집행되는 무이자 대출로, 금융권 대출 한도의 기준이 되는 DSR이나 LTV 산정에서 제외되는 구조로 전해졌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한도와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한 이후 오히려 사내대출 한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 커졌다.

 

민간 기업의 복지제도는 노사 자율 영역이라는 측면이 있다. 다만 일반 국민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DSR과 LTV, 총량 규제를 적용받는다. 반면 대기업 임직원은 회사 내부 복지제도를 통해 별도 자금 조달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 같은 주택시장에 참여하면서도 적용받는 금융 환경이 달라지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공공기관이다. 한국은행,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주요 금융공공기관도 사내 주택자금 대출 혜택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기관은 가계부채 관리, 주택금융, 보증, 금융 안정, 공공주택 정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곳들이다. 국민에게는 대출 규제와 주거 안정 정책을 설명해야 할 기관들이 정작 내부 임직원에게는 별도 저금리 주택자금 통로를 제공한다면 정책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주택금융과 보증, 공공주택을 다루는 기관의 사내대출은 민간 기업보다 더 엄격한 설명 책임이 따른다. LH는 공공주택 공급과 주거복지의 핵심 기관이고, HUG와 주택금융공사는 보증과 주택금융 제도의 한 축을 맡고 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은 정책금융을 수행한다. 이런 기관들이 내부 복지라는 이유로 별도 주택자금 지원을 유지하면서, 밖으로는 국민에게 대출 규제와 가계부채 관리를 말한다면 ‘정책의 안과 밖이 다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 흐름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기준 5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2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아파트값은 66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집값이 오를수록 초기 자금과 대출 가능 금액의 차이는 곧 주택 구입 가능성의 차이로 이어진다.

 

현금 보유력이 있거나 사내대출 등 별도 자금 조달 수단을 가진 계층은 규제 충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반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속하지 않은 서민 실수요자, 중소기업 근로자, 개인 자영업자는 강화된 금융 규제 앞에서 선택지가 줄어든다. 대기업 복지의 그늘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박탈감으로 번진다.

 

중소기업 근로자와 개인 자영업자는 한국 경제의 밑단을 떠받치는 사람들이다. 경기 둔화와 고금리, 임대료 부담, 인건비 상승을 견디면서도 주거 안정에서는 더 불리한 조건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제공하는 사내 주택대출도, 공공기관 수준의 복지제도도 기대하기 어렵다. 같은 세금을 내고 같은 주택시장에 참여하지만, 주거 사다리에 오르는 방식은 처음부터 다르다.

 

이 대목에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부동산 투기를 막는 규제는 필요하지만, 규제가 실수요자와 생업 종사자의 박탈감까지 키워서는 안 된다. 정부는 대기업·공공기관 사내대출 실태를 점검하는 것과 함께, 중소기업 근로자와 개인 자영업자의 주거 안정을 보듬을 별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중소기업 근로자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형 주택자금 대출,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장기 저리 보증, 성실 납세 자영업자에 대한 주거금융 우대, 무주택 장기근속 중소기업 근로자 지원 확대 등을 검토할 수 있다. 대기업 임직원의 복지를 끌어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제도 밖에 남겨진 사람들의 주거 사다리를 보강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본지는 삼성전자 홍보팀에 사내 주택대부 제도 관련 사실 확인과 반론을 요청했다. 질의에는 지원 대상, 지원 한도와 차등 기준, 연 1.5% 금리 적용 방식, 실거주 확인 절차, 초고가 주택·갭투자 의심 거래 제외 기준, 시행 시기와 세부 운영 지침 확정 여부 등이 포함됐다. 아직 사측 의견은 받지 못했다.

 

삼성전자의 사내 주택대부 제도가 곧바로 위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대기업이 직원의 주거 안정을 돕는 일 자체도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다만 국내 최대 기업의 수억 원대 저금리 주택대부 제도라면 설명 책임이 따른다. 특히 초고가 주택 제외 기준, 갭투자 방지 장치, 실거주 확인 방식, 금융권 대출과의 병행 가능성은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사내 주택자금 대부가 복지제도라는 이유만으로 가계부채 관리 논의에서 제외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금융권 대출과 동일한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더라도, 주택 구입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는 대규모 저금리 자금이라면 부동산 시장 안정과 대출 규제 형평성 차원에서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고 했다. 안정된 생업과 생활 기반이 없으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항산은 곧 주거 안정이다. 집은 투기의 수단이기 전에 삶의 터전이다.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국가의 선언은 대출 규제 강화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규제의 사각지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동시에 대기업과 공공기관 울타리 밖에 있는 중소기업 근로자, 개인 자영업자, 서민 실수요자의 박탈감을 보듬는 보완책도 필요하다. 공정한 주거정책은 누군가의 복지를 빼앗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더 많은 국민이 주거 사다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의 빈틈을 메우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