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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향교, 충효교실 특강 묘도문자(墓道文字) 강좌 개최

김두호 기자
2026.05.29·3분 읽기·조회 70

 

기장향교(전교 정종영)는 지난 5월 28일 오전 10시 유림회관(당호 집인관)에서 충효교실 특강 15회차 중 제3강 ‘묘도문자(墓道文字)에 관하여’ 주제의 강좌를 개최했다.

 

제1강 유교의 현대화 방안(최영갑 박사), 제2강 제사의 본뜻과 제수에 대한 논란(정길연 박사)에 이어 정길연 박사가 진행한 이날 강의에는 정종영 전교를 비롯한 유림과 지역주민들이 참석해 비석(碑石)의 유래에 대한 내용을 경청했다.

 

정길연 박사는 “조선 시대 학자들의 문집에는 이른바 ‘비지(碑誌) 문자’라고 불리는 묘도문자(墓道文字)가 실려 있는데 적게는 한두 편에서 많게는 수십 권 이상인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묘도문자의 형식은 일반적으로 묘비(墓碑), 묘갈(墓碣), 묘지(墓誌), 묘표(墓表) 등으로 나뉜다. 이처럼 다양한 형식을 갖춘 묘도문자가 새겨진 비(碑)는 ‘돋운다[埤]’의 뜻이니 상고 시대에 제왕이 처음 봉선(封禪)이라 칭하며 산악에 돌을 세워 그 뜻을 도드라지게 했기에 ‘비’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명나라의 학자 오눌(吳訥, 137201457)은 ‘돌이 우뚝 서 있는 것이 갈(碣)이며, 근세에는 5품 이하 관원의 묘에 사용되는데 비(碑)와는 다르다’고 했고, 원나라의 반앙소(潘昻霄)는 『금석례(金石例)』에서 ‘5품 이하는 비(碑)라 하지 않고 묘갈이라 하며, 갈의 높이는 4척이다’고 했으며, 서사증(徐師曽, 1517-1580)은 ‘진(晉)나라 때 반니(潘尼)가 반황문(潘黃門)의 묘에 세운 갈이 시초이다’라고 안내했다.

 

“묘갈(墓碣)의 제목에 ‘명(銘)’ 자가 있으면 명문이 있는 경우이고, 없으면 명문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예외도 존재한다. 예컨대 허목(許穆, 1595-1682) 선생의 「북청판관이공갈(北靑判官李公碣)」은 제목에 ‘명(銘)’ 자가 없지만 실제로는 명문이 수록되어 있다” “동국 18현인 박세채(朴世采, 1631-1695) 선생은 ‘사(辭)는 학행과 덕을 서술한다’고 했다” “근래 50-60년 사이에 세워진 비석들을 보면 묘표 형식은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 묘갈명(墓碣銘)이라는 명칭으로 세워져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진정한 덕행이나 공적이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본받을 만한 행적이 없는 경우에도 묘갈명이라는 제목으로 대형 비석을 세우고, 심지어 신도비에 쓰는 이수(螭首)를 얹어 놓는 사례도 있다. 이는 선조를 기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오히려 선조를 욕되게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큰 명성을 어찌 큰 돌에 새기겠는가. 길가는 사람의 칭송이 비석보다 낫다.(大名豈有鐫頑石 路上行人口勝碑)라는 구절이 생각난다”고 하며 강좌를 마쳤다.